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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쉬빌은 컨트리 음악의 도시로 유명하다. 안 그래도 일군의 컨트리 관련 종사자들이 음악제에 참여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내쉬빌에서는 차기 대통령 후보 선전이 한창이다. 이와 맞물리면서 컨트리음악제는 변질되기 시작하는데 대통령 후보를 알리기 위한 선전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알트만이 이 영화에서 소재 삼고 있는 컨트리는 순수한 미국적 음악과는 거리가 멀다. 추악한 미국의 이면을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는 것이다.
현장감을 중요시한 대사와 음악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는 현장에서 얻은 즉흥적인 아이디어를 통해 완성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쉬빌〉도 그랬다. 조앤 테퀘스베리와 로버트 알트먼은 전체적인 사건과 각 장면에서 인물들이 할 행동들은 대본으로 치밀하게 구성했지만, 거의 모든 대사는 현장에서 아이디어를 내거나 배우들에게 맡겼다.
현장감을 중시한 것은 영화에 나오는 음악들도 마찬가지다. 음악영화나 뮤지컬은 스튜디오에서 노래와 연주를 녹음한 뒤 더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내쉬빌〉에서는 라이브 공연 다큐멘터리처럼 촬영지에서 배우들이 직접 부르고 내슈빌의 실제 밴드들이 연주한 것을 찍어서 사용했다. 심지어 영화 속 노래들도 배우들이 직접 작사, 작곡했다. 톰 프랭크 역의 키스 캐러딘은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수록곡 상당수를 만들었으며, 바바라 진 역할의 로니 블레이클리 역시 극중 자신이 부를 노래들을 작곡해왔다.
애초 헤이븐 해밀턴 역에는 로버트 듀발, 윈프레드 역에는 베트 미들러 등이 캐스팅되었으나 스케줄 문제로 무산되었다. 영화는 1974년 여름에 내슈빌에서 촬영되었으며 대부분의 엑스트라는 현지 주민들로 충당했다. 그들 대부분은 공연 장면을 구경 온 군중이었는데,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별도의 통제나 동작지시 없이 그들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나 행동을 카메라에 담았다.
영화적 특징 : 앙상블 캐스팅, 멀티플 스토리라인을 통한 ‘거리두기’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대표작들에는 몇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앙상블 캐스팅이다. 이는 한두명이 아니라 많은 수의 주연배우들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영화를 이끌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그렇게 많은 수의 캐릭터들이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 즉 멀티플 스토리라인이다. 세 번째는 와이드스크린을 선호한다는 점인데, 이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기 위한 선택이다. 그외에 탁월한 선곡 감각과 영화를 상징하는 컬러를 다채롭게 활용한다는 점도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전매특허로 손꼽힌다.
이러한 감독의 성향은 〈내쉬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예를 들면 이 영화에는 붉은색과 푸른색, 흰색의 컬러가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미국의 성조기를 이루고 있는 색들이다. 이와 관련해서 주목할 영화적 기법은 앙상블 캐스팅과 멀티플 스토리라인이다. 〈내쉬빌〉에는 주요 인물들만 자그마치 24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남녀노소는 물론 정치계, 언론계, 연예계 등 사회 각 부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내슈빌이라는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국 그 속의 인간군상은 당대의 미국인을 대표한다는 의미다. 말하자면 내슈빌은 미국의 축소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내쉬빌〉의 복합적인 구성은 ‘거리두기’의 효과를 낳는다. 보통 영화에는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메인 캐릭터가 있기 마련이고, 관객은 그 인물의 행동과 대사에 몰입해 영화를 보게 된다. 하지만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에는 그저 각자의 삶을 사는 수십명의 인물들이 있을 뿐 어느 누구도 감독의 주제의식을 대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관객은 어느 한 인물에게 몰입하기보다는 거리를 둔 채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감독은 미국인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이처럼 객관적인 시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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